『급류』 — 불행의 급류를 거슬러

목 끝까지 바닷물이 가득찬 듯 먹먹하고 쓰라린 마음으로 책장을 덮었다. 뭔가 코가 맵고 납득하기 힘든 감정의 연속, 이해가 되면서도 안되는 그런 연출. 아마 나는 작중 주인공들과 같은 경험은 없기에 그런 것이리라.
미사여구 없이 일상적인 표현을 통한 심리 묘사 덕분에 술술 읽힌다. 전반부가 꽤나 충격적이라 몰입감도 괜찮다. 평을 찾아보니 웹소설 같다는 말도 있는데 웹소설은 무엇이며 그냥 소설은 무엇인지 그 차이를 정확히 정의할 수 없는 나로서는 그런 평을 수긍하긴 힘드나 작품성 자체가 아주 뛰어나단 생각은 들지 않아서 이해가 아주 안되는 것도 아니다.
트라우마 극복
잊고 싶고 감추고 싶고 입방아에 올리는 것조차 꺼려지는 그런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바닥보다 더 바닥이 있다던데 그보다 더 아래가 있을 것 같은데 해솔이와 도담이의 삶이 딱 그런 셈이다.
지독한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아니다, 이겨낸다는 표현은 정확치 않은 거 같다. 그 고통을 겪으며 보내는 방식이라고 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할 듯 하다. 어떤 이는 폭주를 하고 어떤 이는 아예 그것을 잊은듯 산다.
그 기억은 모두에게 역린이다. 발작버튼처럼 건들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거고 애써 회피하는 사람도 있겠지. 나 또한 그런 기억이 있는 사람으로서 어찌 삶에서 그런 어두움을 방류했는가 되돌아보게 된다.
타인의 지옥을 사랑할 수 있는가
누군가의 지옥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인간은 겪지 않은 일도 이해할 수 있고 모르는 감정도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직접 겪고 느끼기 전까지 그 이해와 공감의 농도는 매우 옅으리라, 마치 오렌지 함량이 0.1%라도 오렌지 주스인 것처럼.
지독한 기억을 껴안을 수 있는 마음은 동질감에서 오는걸까. 해솔이와 도담이는 같은 경험을 하고도 느낀 바와 대처하는 방법이 달랐음을 보면 같은 경험이지만 다른 시선으로 그 사건을 바라보고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애초에 사람은 다르니까, 다른 입장이니까 당연한 말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그 동질감이란 것은 같은 장소, 같은 순간에서 오는 한낱 피상적인 공감대일 뿐인가. 결국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안아주려는 노력과 각오 없이는 타인의 지옥을 사랑할 수 없다. 지옥에 입성하면서 내 몸이 불에 타지 않겠지란 나이브한 생각으론 상대에게 상처 밖에 줄 수 없을 것이다.
급류 역행
일반적인 사랑 이야기는 아니다. 현실에서 이런 경험을 찾긴 쉽지 않다. 하지만 다들 안다, 서로의 상처를 힐난하지 않고 안아주는 것은 참 힘든 일임을.
사랑은 두 세계관이 충돌하는 화학 작용이다. 그 중 내가 원하는 것만 취하고 원치 않는 것은 밀어내는 방법은 없다. 결국은 타인의 흉터와 고름까지 내게 밀려올거고, 딱히 들춰내고 싶지 않았던 나의 아픔도 전해질 것이다.
병 중에는 현대의 의학으로는 고치기 힘든 난치, 불치병도 존재한다. 씻을 수 없는 상처도 있다. 꼭 새 살이 돋아나야만 나은 것이 아니다. 그 마음이 기능을 다할 수 있다면, 다 나을 수 있을 때까지 서로를 위해 애쓸 수 있다면 그게 사랑의 역할이지 않을까.
해솔이와 도담이가 아픈 기억 딛고 서로를 마주보는 일이 단 한 번 만에 되지 않은 것처럼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닐까, 급류에 빠진 서로를 위해 각자를 위로 밀어주거나 손을 내밀고 놓지 않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