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부검하다.
2024년 2월 8일 부로 3년 8개월 동안 다녔던 정든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간 속의 나를 되짚어본다.
들어가며
언젠가 보았던 내용인데 넷플릭스엔 퇴사 부검 메일이라는 문화가 있다.
퇴사자가 몇 가지 요소가 담긴 부검 메일을 작성하고 직속 상사와 HR 담당자가 그것을 보완하고 다듬어서 완성하는 식이다. 이직이든 해고든 퇴사 사유와는 관계 없이 아래와 같이 다섯 가지가 메일에 담긴다.

꽤나 매력적이고 훌륭한 퇴사 피드백 방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퇴사 회고를 어찌 쓸까 고민하던 찰나에 불현듯 머리 속을 스쳐지나가서 위 방식대로 적어보고자 한다.
⚠️ 부검 메일 포맷으로 퇴사 회고 포스트를 작성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검색을 통해서 몇 분의 글을 보았고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은 일부를 레퍼런스 삼았다.
이 중에서 5번은 내가 작성할 수 없고 3번은 회사 동료들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될 수 없으니 1, 2, 4번을 작성해볼 것이다.
(사실 3번과 5번이 빠져서 퇴사 부검이라고 하기 민망한데...)
1. 왜 떠나는지
떠나는 이유는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변화와 도전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고 세부적으로는 몇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1-1. 차가운 불가항력
연이은 불경기에 수 많은 회사들이 영향을 받았고 스타트업씬도 그 추운 바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작년에 꽤나 유명한 서비스를 운영하는 회사들도 성과 또는 흑자를 내지 못해서 구조조정을 통해서 인원을 감축했다는 뉴스를 심심찮게 봤다. 우리 회사는 안전지대에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진 채로 회사 생활을 해왔는데 역시나 우리 회사 또한 예외는 아니게 되었다.
정확한 내부 사정은 말할 수 없지만 우리 회사도 인원 감축을 위해서 희망퇴직을 받게 되었고 나는 그것에 동의했다. 주위 동료들보다 비교적 쿨하게 결정을 내린 편이지만 나 또한 고민을 많이 했고 그것은 아래에서 이어진다.

이제야 공개할 수 있는 내 메이플랜드 부캐...
1-2. 변화와 도전의 필요성
흔히들 개발자는 배움을 놓으면 안되는 직업이라고 한다. 매일매일 치열하게 업무와 공부를 병행하며 살아갈 순 없어도 개발자 라이프싸이클 내에서 크게 본다면 학습을 게을리 해서는 안되는 것은 분명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중간중간 스터디에 참여하기도 했고 개발 서적을 읽기도 했지만 일이 바빠지면서 자연스레 소홀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흥미가 생긴다거나 업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면밀한 계획 없이 무작정 공부를 시작했던 거 같다. 일이 바빠지면서 공부에 시간을 쏟기 어려워질 때에 대한 Fallback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스터디는 완주하지 못했고 책은 완독하지 못했다.
또한 연차가 올라감에 따라서 성장에 대한 고민은 커져나갔다.
- 훌륭한 동료들이 있음에 도 그 분들의 장점을 흡수하여 성장을 이뤄내고 있는가?
- 경험이 쌓이고 시간이 흐른만큼의 실력과 인사이트를 갖고 있는가?
- 나는 어떠한 개발자로 성장하고 싶은가?
인생은 메이플이 아니기 때문에 경험치나 레벨을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없다. 메이플의 전직 개념처럼 특정 직무를 선택했다고 해서 순차적으로 밟아야할 코스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스스로 물었을 때 나는 어느 레벨에 있는지, 어떤 개발자가 되고싶은지 확실한 대답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

또한 매 스프린트마다 회고를 진행했지만 그것이 나의 성장에 대한 개인적인 회고로 다 이어지진 않았다. 그러니 성장이 정체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성장에는 탄력을 받는 구간이 존재하고 그 바탕에는 학습의 연속성과 피드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그것들을 뒷전에 두지 않았나 반성하게 되는 대목이다.
회사에서 희망퇴직에 대한 공지가 발표된 날, 많은 생각에 잠겼다.

늦지 않았다.
스스로를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칭찬 받는 것이 어색한데 레몬베이스를 통한 동료들의 긍정적인 평가를 보면서 내 생각보다 나는 그래도 잘 해내고 있지 않나, 아직은 성장판이 닫힌 건 아니다란 생각이 들었다.
